
이황
李滉
1501 ~ 1570 · 근세 · 성리학(신유학)
물러나 배운 겸손한 선비
이황은 1501년 경상도 예안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생후 일곱 달 만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열두 살에 숙부에게 『논어』를 배우며 학문을 시작했고, 서른넷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을사사화 등 피비린내 나는 정치 싸움 속에서 형 이해가 귀양길에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겪으며, 권력보다 학문과 수양에 뜻을 두게 됩니다. 그는 고향 토계(兎溪)를 퇴계(退溪), 곧 ‘물러난 시내’라 고쳐 부르고 호로 삼았습니다. 풍기군수 시절에는 백운동서원에 임금의 편액을 청해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만들었고, 만년에는 도산서당을 짓고 제자들을 길렀습니다. 스물여섯 살 아래의 젊은 학자 기대승과 8년 동안 편지로 사단칠정을 논쟁하며 자기 견해를 고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순여덟의 나이에 어린 임금 선조에게 성인이 되는 공부의 요체를 열 폭의 그림으로 정리한 『성학십도』를 올렸는데, 그 모든 그림을 꿰는 중심이 경(敬)이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을 낮추었고, 매화를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100수가 넘는 매화 시를 남겼습니다. 오늘날 천 원 지폐의 인물로도 친숙합니다.
핵심 사상
경(敬) — 마음을 하나로 모아 깨어 있음敬 / 主一無適
흩어진 마음을 한 곳에 모으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여 늘 깨어 있는 것이 모든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사단칠정(착한 마음과 일곱 감정)四端七情 / 理氣互發
사단은 이치가 드러나고 기운이 따르며, 칠정은 기운이 드러나고 이치가 올라탄다.
위기지학(나를 위한 공부)爲己之學
공부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신독(홀로 있을 때 삼감)愼獨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가 진짜 나다.
물러남의 도리退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도 배움이다. 물러남은 도망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는 일이다.
예를 갖춘 논쟁
나이와 지위를 넘어 배우고, 틀린 것은 고치되 지킬 것은 지킨다.
전해지는 이야기
1558년 서른두 살의 신진 학자 기대승이 쉰여덟의 이황을 찾아왔고, 이듬해부터 두 사람은 사단(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과 칠정(희로애락 등 일곱 감정)의 관계를 두고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황은 여러 번 자기 문장을 고쳤고, 나이와 지위를 넘어선 이 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습니다.
퇴계는 원칙만 고집하는 고지식한 학자였다.
스물여섯 살 어린 기대승의 비판을 받아들여 자기 학설을 여러 번 고쳤고, 젊은 이이를 ‘후생가외’로 칭찬한 열린 학자였다.
읽어 볼 책
- 『성학십도』입문 추천열일곱 살의 선조에게 성인이 되는 공부의 요체를 태극도·서명도·소학도·대학도·백록동규도·심통성정도·인설도·심학도·경재잠도·숙흥야매잠도의 열 폭 그림과 해설로 정리해 올린 글. 모든 그림을 경(敬)으로 꿰었다. 이황 사상의 결정판.
- 『자성록』입문 추천이황이 제자와 벗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골라 엮은 책. 마음 병, 공부법, 벗과의 도리 등 구체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일본 에도 시대 유학자들도 애독했다.
- 『사단칠정 왕복서(퇴계·고봉 논변)』기대승과 8년 동안 주고받은 사단칠정 논쟁 편지. 선한 마음과 감정, 리와 기의 관계를 둘러싼 조선 성리학 최고 수준의 철학 토론이자 세대를 넘은 학문적 우정의 기록.
- 『도산십이곡』도산의 자연 속에서 뜻을 기르는 마음(전육곡)과 배움의 자세(후육곡)를 우리말로 노래한 연시조 12수.
- 『퇴계집』이황의 시·편지·상소·잡저를 모은 문집. 『주자서절요』, 『무진육조소』, 『심경후론』 등 주요 글이 실려 있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원문과 번역을 볼 수 있다.
삶의 궤적
- 1501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의 아들로 태어남(음력 11월). 이듬해 아버지를 여읨
- 1512숙부 송재 이우에게 『논어』를 배우기 시작함
- 1528진사시에 합격
- 1534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름
- 1546고향 토계 동쪽에 양진암을 짓고 시내 이름을 퇴계로 고쳐 호로 삼음. 같은 해 둘째 부인 권씨를 잃음
- 1549풍기군수로서 백운동서원에 사액을 청함 — 이듬해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이 됨
- 1550형 이해가 정치적 모함으로 귀양 가던 길에 세상을 떠남. 이후 벼슬보다 학문과 교육에 뜻을 굳힘
- 1558스물세 살의 이이(율곡)가 찾아와 사흘을 머묾. 자신의 편지를 골라 엮은 『자성록』을 펴냄
- 1559기대승과 사단칠정에 관한 편지 논쟁 시작(1566년경까지 약 8년)
- 1561도산서당 완성. 제자들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냄
- 1568열일곱 살의 선조에게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올림
- 1570도산 계상의 집에서 세상을 떠남(음력 12월 8일)
그는 가르친 대로 살려 애썼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고 앉아 책을 읽는 일과를 평생 지켰고, 제자나 아랫사람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스물여섯 살 어린 기대승이 자기 학설의 허점을 짚자 서운함보다 배움을 택해 견해를 고쳤습니다. 한편 그는 신분제와 남녀 유별의 질서를 당연하게 여긴 시대의 사람이었고, 그의 예법 중심 사상이 뒷날 경직된 형식주의로 흐른 측면도 있다는 점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학파 · 성리학(신유학)
흔들리는 감정을 억지로 없애기보다, 마음을 공경히 모아 그 안의 바른 이치를 따르도록 다스린다.
이런 물음에 특히 잘 답합니다
해 볼 수 있는 수련
- 새벽 자리 정돈 — 생활이 흐트러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번아웃에서 회복할 때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이부자리와 책상을 정돈하고, 옷매무새를 바로 한 뒤 5분간 바르게 앉아 오늘 할 일을 떠올린다.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잘한 것 하나, 고칠 것 하나를 적는다.
- 한 가지에 마음 두기 — 할 일이 쌓여 불안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지금 할 일 하나만 정해 종이에 적고, 알림을 끈 채 그 일만 한다. 마음이 다른 데로 가면 탓하지 말고 조용히 돌아온다.
- 하룻밤 묵힌 편지 — 부모·상사·동료와 크게 부딪쳤을 때격한 감정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 말 대신 편지로 쓴다. 상대의 입장 → 나의 뜻 → 내가 질 책임 순서로 쓰고, 하룻밤 묵힌 뒤 다시 읽고 고쳐서 전한다.
- 나를 돌아보는 기록 — 관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스스로를 성찰하고 싶을 때『자성록』처럼, 내가 남에게 쓴 글(메시지·메일)을 일주일에 한 번 다시 읽고 부끄러운 곳과 고칠 곳을 표시한다.
남긴 말
“도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다.”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첫머리, 1568년 선조에게 올린 글
“지금 이 열 폭의 그림은 모두 경(敬)을 주로 삼는다.”
『성학십도(聖學十圖)』 제4 대학도(大學圖) 해설
“경이란 한마음의 주인이요, 모든 일의 뿌리이다.”
『성학십도(聖學十圖) — 주희 『대학혹문』 인용』 제4 대학도(大學圖) 해설
“사단은 리가 드러나고 기가 그것을 따르며, 칠정은 기가 드러나고 리가 그 위에 올라탄다.”
『답기명언논사단칠정 제2서(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퇴계집』 권16